텍스트를 읽는 방법은 두 가지다. 텍스트만을 두고 안으로 아래로 파내려가거나, 그 텍스트와 맞닿은 곳부터 시각을 넓혀가면서 세상과의 관계를 가늠하거나. 첫 번째 방법은 지식과 기술 얻는 데 쓸만하고, 무엇보다 편하다. 복잡다단하고 정오를 가리기 힘든 세상, 하나만 생각하며 읽어도 괜찮다. "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"잖나. 두 번째 방법을 택하면 "세계와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텍스트"도 마주치게 될 테니 그 같은 "세계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불행"에 대비해야 한다. 더구나 "이 지구"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원전의 지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. 힘들겠지만 지식이나 기술과는 다른, 이를테면 지혜 같은 게 생길 것이다.
"이 세상 자체가 지나가버릴 터인데, 이 세상 만물에 대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느냐? 마지막 날에는 네가 무엇을 알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행했느냐를 물을 것이며, 네가 가게 될 지옥에는 학문도 없을 터인즉 헛된 수고를 그치라."는 장 제르송의 말에 고개 끄덕인다면 이 책 잡을 필요가 없다.
"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이론적 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? 그리고 이론적 파악의 출발점인 읽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? 그것이 극단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일까?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"을 찾고자 한다면 이 책에서 시작하길 권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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